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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에 왔다. 도착한 주에 집을 구했다.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게 오히려 불안감을 불러와서, 계약 완료되기 전까지 (아마 한두 사람 빼고) 아무한테도 말을 안했다.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다가 좋은 운이 날아갈까봐?
* 2월에 두 군데의 집에서 살았는데, 둘 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좋은 집이었다. 좋은 집주인을 만났고, 옆 방 사람들도 좋았고, 가격도 합리적이었고, (집 관련해서는) 스트레스 없이, 별다른 문제도 없이 지냈다.
* 요리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이건 포스팅으로 이미 드러났겠네요.
*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 것 같다. 하루에 와인 두 잔? 맥주 한 병? 정도. 독일이 맥주의 나라라고 하지만, 맥주는 배불러서 마시기 힘들어요. (그리고 맥주는 물보다 비쌉니다. 비고: 가장 싼 물과 가장 싼 맥주를 비교한 기준.) 데일리로는 화이트 와인이 정말 좋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화이트 와인도 디저트랑 어울리는 와인, 치즈 플레이트나 간단한 핑거푸드랑 어울리는 와인, 식사와 어울리는 와인, 그냥 그것만 마시는 게 제일 훌륭한 와인... 다 따로 있다는 거 몸으로 배우고 있고요. 겨울에는 위스키를 더 좋아하지만 아직은 자금 사정상... (그렇지만 새로 이사온 집 근처에 술만 전문적으로 파는 마트가 있어서 큰일났다고 한다.)
* 마트에서 술 사려고 하는데, 신분증 달라고 한 적 두 번 있다. 당연히 신분증(=여권) 없었고 술 못사서 기분 안좋았음.
*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안드라스 쉬프 피아노 리사이틀을 감상했다. 처음에 프로그램 북 없이 감상하다가 있는게 낫겠다 싶어서 인터미션 때 구매했는데, 테마가 고별, 작별이었다. 클알못이지만 그 날 들었던 곡 중 좋았던 걸 생각해내서, 한동안 집에서 유튜브로 다시 감상했다. 아름다운데 듣다보면 되게 슬픈 곡들이다. 요즘은 안듣고 있다. 두 곡만 공유해본다. (돌이켜보면 쉬프의 연주는 유튜브의 연주자들보다 훨씬 투박했다. 곡 자체가 굉장히 섬세한데 어떻게 그렇게 연주했는지 신기하다. 투박함이 주는 울림이 컸다.)
- Mozart, Rondo in A minor, K. 511: https://www.youtube.com/watch?v=OSvHvxcyiy4
- Brahms, Drei Intermezzi op. 117: https://www.youtube.com/watch?v=w4nnjhHe15U
*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영화를 한 편 봤다. (홍상수 감독, <풀잎들>) 이 영화 리뷰를 쓰려고 몇 번 시도했는데(쓰다 만 글이 임시저장 되어있다) 너무 어렵다. 언젠가 완결된 글로 쓰고 싶긴 하지만 영영 못쓰는 것보다는 나으니 짧게만 적어둔다.
-누구에게나 구차하고, 비루하고, 구질구질한 면모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걸 굳이 드러내지 말라고, 되도록이면 감추고 살라고 배워서 없는 척하는 것 뿐이지, 나에게 있다고 인정하기도 싫은 욕망이나 생각이나 성격 같은 게 하나도 없는, 그 자체로 완벽한 사람은 없다.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구차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에게 평생 닥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래서 그렇게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을까? <풀잎들>에서는 각기 다른 상황에서 그렇게 바닥까지 간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이어진다. 내가 제어할 수 없었던 사건에 대해 네 탓이라며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 사랑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눈물을 훔치는 사람, 상대방의 거절을 못들은 척하고 어떻게든 얹혀 살아보고자 부탁하는 사람, 등등... 내가 20대 초반일 때는 홍상수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소위 '찌질한' 인물들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런데 내가 그 때보다 몇---년을 더 살아서인지, <풀잎들>의 만듦새나 구성이 유려해서인지, 저렇게 민망한 상황에서 누구하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고 계속 대화를 나누고, 그래서 대화가 이어지다보면 심각했다가 웃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진솔하게 교류하는 인물들이 좋아보였다. 어른의 세계에서는 내가 느끼는대로 다 표현하거나, 생각하는대로 다 말하면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에 충실히 따른 우리에게 남은 건 무엇인지?
* 커피관련 기구를 두 종류 구매. 집 구해지기도 전에 커피머신(중고에요) 샀다... 커피 못 마셔서 한맺힌 귀신 붙었니???????(<-라고 내 자신에게 말해보기도 했지만 이미 거래가 성사된 후)
* 베를린은 대중교통 표검사를 많이 한다. 한 달 동안 4회 이상 있었던 듯(주로 S반).
* 내가 만난 관청 등등 업무 처리의 담당자 여태까지 다 친절했음(심지어 뭐 안된다고 거절됐을 때도 너무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납득하였고 낙심하지 않았다).
* 쓰다보니까 그냥 아무말대잔치가 된 것 같다. 마무리를 잘 끝맺기 위해(?) 요즘 갖고 싶은 것(무순위)
- 초록 식물이 있는 화분
- 촉감이 좋은 파자마
- 샤워가운
- (양질의) 실내 슬리퍼
- 꽃을 꽃을 수 있는 무언가(술병 제외)
- 너무 크지 않은 카펫,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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